
유대인은 누구인가?
이스라엘에서 18년을 살며 가장 자주 받은 질문 하나가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이 대체 누구예요?” 쉬워 보이지만, 막상 답하려 들면 한 문장으로는 좀처럼 정리되지 않는 질문입니다.
한국에서 떠올리는 유대인의 모습은 대개 둘 중 하나입니다. 유대교를 독실하게 믿는 종교인, 아니면 하얀 피부의 유럽계 사람들. 그런데 현장에서 만나는 유대인들은 이 그림과 번번이 어긋납니다. 제가 아는 유대인 중에는 신을 믿지 않고 회당 근처에도 가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안식일에 차를 몰고 쇼핑을 가고 기도 한 번 하지 않지만, “당신은 유대인입니까?”라고 물으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고 답합니다.
혈통을 따져도 제각각입니다. 유럽 혈통이 절반인 사람, 에티오피아에서 건너온 사람, 이라크에서 수천 년을 살아온 사람 — 피부색도 언어도 즐겨 먹는 음식도 전부 다릅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을 같은 이름, “유대인”으로 부릅니다.

예루살렘 올드시티의 유대인들
유대인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그렇다면 유대인은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요? 학자들은 이들을 ‘종족 종교 집단(ethnoreligious group)’이라 부릅니다. 민족이면서 종교이고, 문화이면서 역사적 공동체라는 뜻이죠. 결국 어느 한 가지로는 묶이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이 지점을 놓치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자체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내부의 갈등도, 팔레스타인과의 오랜 분쟁도, 따지고 보면 전부 “유대인이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종교로 나뉘는 네 종류의 유대인
18년 동안 이스라엘에서 살면서, 같은 유대인이지만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것을 봤습니다. 이스라엘 유대인은 크게 네 그룹으로 나뉩니다.
세속적 유대인 · 힐로님
일반적인 현대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 유대교는 신앙의 대상이라기보다 삶의 뿌리가 되는 ‘문화’이자 ‘역사’에 가깝습니다. 첨단 기술과 민주주의,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텔아비브의 카페나 해변에서 일상을 즐깁니다. 종교가 삶을 규제하는 데 비판적이지만, 유대인이라는 민족적 자부심만큼은 누구보다 강합니다.
전통적 유대인 · 마소르팀
세속과 종교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현대적인 삶을 살면서도 유대교의 전통을 소중히 간직합니다. 안식일에 모든 일을 엄격히 멈추지는 않더라도, 가족과 모여 촛불을 켜고 식사하며, 절기마다 전해 내려오는 의식을 지키는 데서 정체성을 찾습니다.
종교적 시온주의자 · 다팀
신앙과 애국심이 강한 사람들입니다. 종교적 원칙을 지키면서도 국가 시스템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그룹으로, 머리에 작은 ‘키파’를 쓰고 현대적인 직장과 군대에서 헌신적으로 일합니다. 이들에게 이스라엘 국가는 성경의 예언이 실현되는 거룩한 땅이며, 국방과 경제 활동은 곧 신의 뜻을 받드는 숭고한 임무입니다.

다팀들이 회당에서 예배드리는 모습
초정통파 · 하레딤
검은 코트와 모자, 길게 기른 옆머리로 상징되며 현대 문명과 거리를 둔 채 오직 ‘토라(율법)’ 공부에만 온 삶을 바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 세상의 중심은 국가의 법이 아니라 신의 계명이며, 세속적 가치로부터 자신들의 공동체를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습니다.

하레디 가족이 예루살렘 거리를 걷는 모습
민족으로 나뉘는 유대인
종교적 분류 외에도, 민족적 출신에 따라 유럽에서 온 유대인(아슈케나지), 중동에서 온 유대인(미즈라히), 스페인에서 추방된 유대인(세파라디), 그리고 에티오피아에서 온 유대인 등, 피부도 언어도 다른 유대인들이 있습니다.
순례 중 예루살렘의 한 박물관에서 에티오피아계 이스라엘 군인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함께 온 한국 순례객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이스라엘 군인이에요?” 아프리카계 외모의 유대인 군인이 낯설었던 거죠. 그는 웃으며 답했습니다. “나는 에티오피아 출신 이스라엘인입니다. 우리 부모님은 솔로몬 작전으로 오셨어요.”

에티오피아 유대인 군인
따라서 유대인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습니다. 민족이면서 종교이고, 문화이면서 공동체입니다. 같은 유대인인데 세속과 초정통파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같은 유대인인데 피부색이 다르고, 같은 유대인인데 먹는 음식과 쓰는 언어가 다릅니다. 이 복잡함을 이해하지 않으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1991년 5월, 에티오피아 내전의 위기 속에 고립된 유대인 공동체 ‘베타 이스라엘(Beta Israel)’을 구출하기 위한 수송 작전입니다. 단 36시간 만에 34대의 민간·군용기를 동원해 약 14,000명을 이스라엘로 실어 날랐습니다. 특히 보잉 747 한 대에 좌석을 모두 뜯어내고 1,088명을 태운 기록은 항공 역사상 단일 비행 최다 탑승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전 세계 어디에 있든 유대인은 반드시 구한다”는 이스라엘의 귀환 의지를 상징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유대인은 민족인가요, 종교인가요?
둘 다입니다. 학자들은 유대인을 ‘종족 종교 집단(ethnoreligious group)’으로 봅니다. 민족이면서 종교이고, 문화이자 역사적 공동체여서 하나로 정의할 수 없습니다.
유대인은 모두 유대교를 믿나요?
아닙니다. 이스라엘 유대인 상당수는 세속적 유대인(힐로님)으로, 신을 믿거나 회당에 가지 않아도 스스로를 유대인이라 여깁니다.
이스라엘 유대인은 어떻게 나뉘나요?
종교적으로는 세속(힐로님)·전통(마소르팀)·종교적 시온주의(다팀)·초정통파(하레딤)로, 민족적으로는 아슈케나지·미즈라히·세파라디·에티오피아계 등으로 나뉩니다.

